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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뷰티는 왜 화장품을 90% 싸게 팔 수 있을까

오프뷰티는 화장품을 최대 90% 할인 판매하는 도심형 뷰티 아울렛이다. 단순 재고 처리가 아닌, 브랜드 직거래 구조로 소비자와 브랜드사 모두를 끌어들인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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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오프뷰티는 창고에서 화장품을 팔기 시작했을까

광장시장에서 조선미녀 선크림을 3,000원에 샀다는 이야기를 SNS에서 처음 봤을 때, 솔직히 가품을 의심했다. 설화수가 철제 선반 위에 쌓여 있다는 것도 이상했다. 그런데 직접 매장에 가본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가품 아니냐고 물어봤더니 진품 맞다고 했고, 사서 써봤더니 진짜였다."

오프뷰티는 2024년 5월 서울 광장시장에 1호점을 열었다. 지금은 전국 30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고, 올해 안에 100개를 목표로 하고 있다. 5개월 만에 20개 매장. 브랜드 하나가 이 속도로 오프라인 유통을 확장하는 건 요즘 보기 드문 일이다.

이 현상을 이해하려면 K뷰티 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먼저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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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뷰티에는 재고가 넘친다

한국 화장품 시장은 오랫동안 두 가지 힘으로 굴러왔다. 하나는 새 브랜드를 끊임없이 낳는 제조사(코스맥스, 한국콜마)의 생산력이고, 다른 하나는 그걸 유통하는 올리브영의 영향력이다. 이 구조에서 살아남은 브랜드는 자리를 잡지만, 그렇지 못한 브랜드는 재고를 떠안는다. 색조 화장품은 특히 심하다. 컬러가 유행을 타고, 유행이 지나면 팔리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제품력을 가졌더라도 마케팅 예산이 없으면 소비자 눈에 닿지 않는다.

오프뷰티는 이 재고를 통째로 산다. 브랜드사와 직거래로 상품을 '완사입'하고, 중간 유통 마진을 없앤 자리에 할인율을 채운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은 90%까지 내려가지만, 매장 직원 말에 따르면 이런 제품이 전체의 30% 수준이다. 나머지 70%는 패키지 리뉴얼이나 채널 조정 때문에 발생한 '전략적 재고'다. 써도 되는 제품이, 사정이 생겨 시중에 풀리지 못했던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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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가 온라인을 싫어하는 이유

오프뷰티가 온라인 채널을 운영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전략적으로 중요하다. 화장품 브랜드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는 '온라인 최저가 붕괴'다. 공식 판매가보다 낮은 가격이 온라인에 노출되는 순간, 정가 구매의 이유가 사라진다. 백화점에서 40만 원짜리 크림을 파는 브랜드가 만 원에 유통되는 모습을 원할 리 없다.

오프뷰티는 이 문제를 오프라인 전용으로 해결한다. 매장에서만 팔리는 할인은 흔적이 남지 않는다. 스크린샷도 없고, 가격 비교 사이트에도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설화수가 들어올 수 있고, 딥디크가 들어올 수 있다. 브랜드 이미지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재고를 소진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오프라인 채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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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 직전 브랜드의 심폐소생

오프뷰티의 역할이 단순한 재고 처리 창구에 그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스킨케어 브랜드 '델피어'는 단종을 앞두고 있었다. 제조는 검증된 회사에서 했지만, 소비자에게 닿는 길이 없었다. 오프뷰티에서 팔리기 시작하자 입소문이 났고, 완판 후 추가 생산까지 이어졌다. 마케팅 예산이 없어서 사라질 뻔한 브랜드가, 적당한 가격과 오프라인 접점 하나로 살아난 것이다.

이건 오프뷰티가 단순한 할인 매장이 아니라는 신호다. 브랜드사 입장에서는 재고를 현금으로 바꿔주는 창구이자, 소비자 반응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테스트베드가 된다. 어떤 제품이 팔리고 어떤 제품이 외면받는지, 데이터가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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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영의 대항마가 될 수 있을까

업계에서는 오프뷰티를 올리브영의 대항마로 보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다른 층위에서 경쟁하고 있다는 게 더 정확하다. 올리브영은 '발견'과 '큐레이션'에 강하다. 이 브랜드가 왜 좋은지 설명해주고, 신제품을 먼저 경험하게 해주는 곳이다. 오프뷰티는 '이미 알고 있는 제품을 싸게 사는' 경험이다.

그런데 이 둘이 완전히 분리된 소비자를 노리는 건 아니다. 올리브영에서 제품을 발견하고, 오프뷰티에서 재구매하는 패턴이 생길 수 있다. 그게 실제로 일어나기 시작하면, 올리브영 입장에서는 구매 전환을 뺏기는 구조가 된다.

오프뷰티가 풀어야 할 문제도 있다. 라벨·표시사항 미준수 지적이 나왔고, 가격 비교의 불투명성도 초기에 언급됐다. 유사한 모델을 시도했던 이랜드 팩토리아울렛이 결국 온라인에 밀려 문을 닫은 전례도 있다. 오프뷰티가 다른 결말을 쓰려면, 지금처럼 브랜드사를 공급망으로 끌어들이는 구조를 유지하면서 소비자의 신뢰를 쌓아가는 것이 핵심이 될 것이다.

뷰티 시장의 과잉 재고 문제는 구조적이다. 그 구조를 비집고 들어온 오프뷰티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지금은 지켜보는 단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