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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렁뚱땅 상점은 어떻게 '웃긴 굿즈'에서 브랜드가 됐을까?

방송국 PD 출신이자 침착맨 동생 이세화 대표가 만든 얼렁뚱땅 상점. 웃긴 티셔츠로 시작했지만 '이걸 입고 밖에 나갈 수 있나'라는 기준 하나로 밈 굿즈를 스테디셀러로 만들었다. 팬심에서 제품력으로, 팬덤 브랜드가 태도 브랜드로 진화하는 과정을 들여다봤다.

보통 밈 굿즈는 보는 순간 웃기고, 사는 순간 후회가 시작된다. 서랍 어딘가에 묻혀 있다가 버리기도 애매한 채로 몇 년을 보낸다. 그런데 얼렁뚱땅 상점의 옷들은 그 개구리 티셔츠를 포함해 뭔가 달랐다. 누적 2,000장 이상이 팔렸고, 지금도 수요가 있다. 밈 굿즈가 스테디셀러가 되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이 브랜드에 뭔가 구조적인 이유가 있을 것 같아서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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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이 얼렁뚱땅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들이 있다

얼렁뚱땅 상점의 대표 이세화는 방송국 편성 PD로 일하다 퇴사했다. 거창한 계획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냥 자신이 입을 티셔츠를 하나 만들고 싶었는데, 공장 최소 수량이 10장이었다. 그래서 인스타그램에 "혹시 살 사람 있어요?"라고 올렸다. 반응이 생각보다 좋았다. "그럼 스마트스토어 만들게요"라고 했고, 얼떨결에 브랜드가 시작됐다.

이름도 그 과정에서 나왔다. 혼자 모델, 포장, CS를 다 하다 보면 실수가 생길 수밖에 없는데, 욕을 먹어도 "저희가 얼렁뚱땅이잖아요"라고 이름 핑계를 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일종의 방어막이었다.

그런데 이 방어막이 나중에 예상 밖의 자유로 바뀌었다.

얼렁뚱땅 상점이 옷 가게임에도 카레를 출시했을 때, 주변에서 "옷 가게가 무슨 카레냐"고 했다. 이세화 대표가 이 질문에 한 답변이 인상적이다. "샤넬에서 카레가 나오면 다들 '왜?'라고 묻겠죠. 샤넬은 향수, 가방, 옷을 내야 한다는 기대가 있으니까요. 저희는요? 아무도 기대를 안 해요. 그게 오히려 자유였어요."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카테고리가 아니라 태도에 있을 때, 확장의 제약이 사라진다. 얼렁뚱땅은 '웃긴 브랜드'가 아니라 '재밌게, 진지하게 만드는 브랜드'다. 옷이 됐든 카레가 됐든 그 태도가 유지되면, 고객은 납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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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입고 밖에 나갈 수 있나"가 모든 것을 걸러낸다

웃긴 아이디어는 계속 나온다. 친구들과 수다 떨다가도 나오고, 유튜브 댓글 보다가도 나온다. 그런데 90%는 다음 날 보면 안 웃긴다. 시간이 1차 필터가 된다.

살아남은 아이디어는 하나의 질문을 더 통과해야 한다. "이걸 입고 밖에 나갈 수 있나?" 아무리 웃겨도 현실에서 소비될 수 없으면 세상에 나오지 못한다. 잠깐 밈으로 끝나는 티셔츠는 처음부터 만들지 않겠다는 기준이다.

그래서 얼렁뚱땅 상점의 기획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보수적이다. "99가지 자잘한 이유가 있어도 하나의 치명적인 리스크가 보이면 안 가요." 실제로 출시되는 제품은 그 많은 아이디어 중 아주 일부다.

개구리 티셔츠가 스테디셀러가 된 이유도 이 기준에 있다. 그게 확실히 웃겼던 건 맞다. 하지만 웃기기만 했다면 지금쯤 기억에도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입을 수 있는 옷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꺼내 입는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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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심이 한계에 부딪힐 때, 제품이 버텨야 한다

초기 성장의 많은 부분은 팬덤이 만들었다. 이세화 대표는 유튜버 '통닭천사'로 10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고, 침착맨 방송을 통해 이름이 알려졌다. 그 채널을 통해 들어온 사람들이 응원의 마음으로 제품을 샀다.

그러나 이 구조가 영원하지 않다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결국 제품이 좋지 않으면 오래 가지 못한다"는 게 이세화 대표의 판단이었다.

그 판단이 현실이 된 건 최근이었다. 2024년 연매출이 정점을 찍은 뒤 성장 곡선이 꺾이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재밌으면 사줬는데, 이제는 아니었어요." 불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에 돈을 쓰는 소비가 빠르게 줄었다. '누구의 굿즈'이기 때문에 사는 시기는 끝났다.

그때부터 질문이 바뀌었다. '재밌는가'에서 '왜 사야 하는가'로.

'장인 셔츠'는 그 변화의 결과물이다. 무신사 스탠다드나 스파오와 비슷한 가격대에, 디테일과 마감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기준으로 설계했다. 셔츠 깃에 심을 넣는 공정을 고집하다 바늘이 수차례 부러졌다. 생산성이 떨어져도 기준을 낮추지 않았고, 세탁기에 막 돌려도 형태가 무너지지 않는 셔츠가 나왔다.

더 오피스 IP 협업도 같은 맥락에서 시작됐다. 유튜브 촬영 중 더 오피스 티셔츠를 입었더니 댓글에 "저거 어디서 샀어요?"가 계속 달렸다. 이세화 대표는 권리자를 수소문해 직접 이메일을 보내고 미팅을 거쳐 라이선스 계약까지 체결했다. 이 협업 이후 "저 사람들이 저걸 왜 해?"라는 반응과 함께, 기존 팬 외에도 제품 자체 때문에 들어오는 신규 고객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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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게 없어도 기웃거리게 되는 공간

얼렁뚱땅 상점은 현재 전체 매출의 80%를 자사몰에서 거둔다. 스마트스토어가 '남의 집'처럼 느껴진다는 이유로 직접 운영하는 사이트로 옮겼다.

이세화 대표가 꿈꾸는 자사몰은 "살 게 없어도 괜히 기웃거리게 되는 동네 작은 소품샵"이다. 배송 공지 하나를 올려도 위트를 섞는다. 상세 페이지는 제품 스펙 나열이 아니라 하나의 읽을거리다. "당장 결제 버튼을 누르지 않더라도, 들어와서 킥킥대며 구경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팬이 된다"는 믿음이 이 공간을 만든다.

그 믿음은 지금 전국으로 확장되고 있다. 2026년에는 부산, 대구, 광주, 청주, 서울 다섯 개 도시에서 팝업을 열 계획이다. 서울에서 통했던 것이 다른 지역에서도 통하는지 몸으로 확인하는 과정이고, 작은 오프라인 매장을 낼 수 있는지 가능성을 가늠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얼렁뚱땅 상점이 흥미로운 건 가벼움을 전략으로 만든 방식 때문이다. 이름은 느슨해 보이고, 제품은 카레까지 넘나들고, 시작도 얼떨결이었다. 그런데 그 안에서 반복되는 선택들은 결코 느슨하지 않다. 무엇을 내놓고, 무엇을 버릴지에 대한 기준이 일관되게 있다.

브랜드를 카테고리로 정의하지 않고 태도로 정의했을 때, 어떤 확장이 가능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다.